수필가 손영복 교장 란

내고향, 꽃피는 남하리

정광국 2013. 1. 11. 21:00

                                내고향, 꽃피는 남하리

 

                                                                                                                    손 영 복

 

나는 어린 시절을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에서 자랐다. 내 유년과 소년 시절의 보금자리인 ‘남하리.’ 유성이 흐르는 밤하늘은 유난히도 맑았다. 그런 밤이면 마당에 짚으로 만든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피워 놓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곤 했다 우리 마을 밤하늘엔 유난히도 별들이 많았고, 밤이 이슥해지면 별똥별들이 꼬리를 달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수놓았다. 마을 주변을 작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봄부터 가을까지 풍성한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봄이면 진달래와 싸리꽃이 온 산을 뒤덮고, 여름이면 무성한 숲 속에서 하루 종일 노래하는 새들의 노래 소리, 가을이면 탐스럽게 달린 밤송이와 머루 다래, 한겨울엔 희고 아름다운 설경이 있었다.

기찻길 건너편에는 사과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금호강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새벽이면 자욱하게 강에서 물안개 피어오르고, 해가 지고난 후 마을 뒤 대나무 숲엔 새들이 깃드는 것을 관조하는 기쁨도 있었다.

산과 들과 물이 어울리는 곳, 나무와 풀이 아름다운 숲생태계를 이루는 곳, 뒷동산 자락의 밤나무 밭에서 알밤을 줍기도 하였다. 금호강 맑은 물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영을 하고, 해질 무렵 강둑에 앉아 조례봉 허리를 바라보면서, 초등학교 6학년 음악 시간에 배운 박태준의 ‘동무 생각’을 목청껏 불러 보곤 했다.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내고향, 꽃피는 남하리 앞에 있는 금호강에서 어떤 할머니가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강을 건너려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주고 싶었다. “할머니, 제가 들고 건너 드리겠습니다.”하니 괜찮다고 하셨다. 계속해서 할머니를 도와드리겠다고 하니 “고마워서 어쩌누.”하시면서 보따리를 내려주었다.

나는 짐을 들고 할머니와 같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여울이라 물은 무릎 아래까지만 올라왔으나 강바닥에는 이끼 낀 자갈들이었다. 아! 강 중간쯤에서 발이 자꾸만 미끄러지는 것이 아닌가!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보따리가 저만큼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죽을 힘을 다하여 보따리를 겨우 건져서 강 건너 맞은편 강가에 내려놓았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몇 번이고 할머니께 머리를 숙였다. 할머니는 “학생이 착한 일을 하려다 이렇게 되었는데 어떠냐?. 괜찮다.”하시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시었다.

보따리를 푸시는데 보니 그 속에는 대구에서 학교에 다니는 손자에게 주려고 삶은 고구마 옥수수등 먹을 것이 들어 있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괜찮으니 집으로 가라고 하시며 오히려 내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시었다. 나는 할머니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과수원 길을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혼자 피식 웃기도 하고, 할머니께 미안하기도 하다.

교직에서 퇴직하고 난 후, 직접 가르친 제자들이 찾아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오늘이 바로 그런 기쁜 날이다. 40여 년 전에 내가 담임을 했던 제자들이 나를 만나려 내가 농사를 짓고 있는 내고향, 꽃피는 남하리의 과수원으로 온다는 연락이 왔다. 아침부터 농막을 대청소하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줄 무공해 채소들도 잘 손질했다. 오늘과 같이 제자들이 올 때는 농막이 있어 여럿이 빙 둘러앉자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게 식사도 할 수 있어 참 좋다. 특히 우리 농막은 현대식으로 만든 컨테이너가 아니고, 짚과 천등 재래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더울 때는 시원하면서도 햇빛의 자외선을 차단 시켜 주고, 바람이 심하게 불 때에는 바람막이 구실도 한다. 또 일을 하다가 피곤할 때는 잠시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농막은 나의 도서실이자 공부방이어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도 써 보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중, 오전 10시경에 10여명의 제자들이 도착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는 제자들을 일일이 이름을 불러 주면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제자들은 준비한 도시락과 음식물을 농막에 내려놓았다.

잠시 후 커피를 끓여 한잔씩 마시면서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대답하는 순서가 진행되었다. 이어서 농장 밖으로 나가 김을 매고, 채소에 물도 주었다.

제자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나는 1980년에 523평의 이 농장을 구입했으며, 그동안 남에게 주어 농사를 짓게 하다가 4년 전에 내가 직접 경작하고 있다는 말과 이곳에는 자두나무 50그루, 감나무 30그루, 그 외 대추나무, 오갈피나무, 석류나무, 매실나무등 10여 가지의 과일나무와 고추, 무, 배추 등 채소도 재배하고 있다는 설명도 해 주었다.

50대 중반의 제자들도 내 설명에 관심을 가지고 경청해 주었다. 이어 제자들이 갖고 갈 채소들을 뽑아 비닐 봉투에 넣어 나누어 주면서 내가 직접 재배한 것이고,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무공해 농산물이니 꼭 집에 갖고 가서 요리해서 맛있게 먹어라고 당부를 했다.

산과 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에서 옛 제자들과 같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 행복했다. 이어 점심 식사 때가 되어 제자들이 준비해 온 음식으로 식사를 하니 그 맛이 꿀 맛 같았다. 3시경 오늘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차를 한잔씩 다시 나누고 다음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제자들은 돌아갔다. 나는 자두나무 아래에서 돌아가는 제자들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서 있었다.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과 같이 나도 내고향, 꽃피는 남하리에서 자두나무 사과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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