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대통령과 얼킨 일화!
9·28서울 수복으로 경무대로 돌아왔을 때, 대통령 집무실에 고급양복 웃저고리, 소련제 양주 등이 널려 있었고, 바닥은 온통 대변 투성이였습니다. 어디서 약탈해 왔는지 세탁기 10여 대, 양복장 일곱 개도 있었고, 대강당 바닥 에는 말똥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화장은 침대 하나만 남겨놓고, 몽땅 털어가 버렸습니다.
그해 겨울, 이화여대 김활란(金活蘭) 박사가, 워커 장군의 동상기금으로 써달라며, 교수들의 월급을 모아 경무대를 방문했습니다. 난로도 안 피우고 온몸을 담요로 감싼 채, 일 하는 이 대통령을 보며, 김활란 박사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김활란 : "연세도 있으시니, 난로 정도는 피우고 일하시지요."
대통령 : "다리 밑에서 떨고 있는, 수많은 피난민 동포들을 생각하면, 이것도 과분하다"
전쟁 중에 이 대통령은 "죽음이 결코 두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후사 없이 죽는 게, 조상에 죄지은 불효자일 뿐이다" 라는 유서를 갖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이기붕(李起鵬)의 아들 이강석(李康石)을, 양자로 맞은 후에 집안에는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경무대 내실에서 일했던 방재옥(方在玉)씨는, 강석이가 깍듯하고 반듯한 청년이었다며 "귀하신 몸"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경무대 이층의 낡고 초라한 방에서 지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자유당 정권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대통령직을 사임해야겠다는 결심이 이미 서 있었을 때, 그토록 사랑했던 양자 강석이 경무대 안에서 자기 권총으로 부모와 동생을 쏘고 함께 자결했다는 비보를 들었을 때, 대통령의 슬픔과 충격이 너무나 깊었습니다.
자살 소식을 듣고, 이 대통령은 심한 안면경련을 일으키며 눈이 충혈 되더니, "이 불쌍한 늙은이를 버리고 죽다니"라며 비통해하면서, "아들 하나 제대로 못 지키는 주제에 살아서 무엇 하나" 하며 한탄했습니다. 이강석의 자결 소식은 프란체스카가 그토록 지키려고, 애썼던 대통령의 건강을 영원히 빼앗아 가고 말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아들의 자결 소식을 접하고, 실어증까지 겹쳐 유창한 영어를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5월29일 대통령 부부는 하와이로 떠나면서, 마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늦어도 한 달 후에는 돌아올 테니 집 잘 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그길로 이승만 대통령은 살아서,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갈 때 짐은 전부 네 개였는데, 옷을 담은 트렁크 두 개와 마실 것과 점심, 약품을 담은 가방 하나, 타자기 가방이 전부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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