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북한국보 23호 평양종(平壤鐘)
대동문 평양종(大同門平壤鐘)은 조선시대에 제작해
대동문
누각에 달아놓았던 종을 말한다.
이 종은 1890년대까지 평양시민들에게 비상경보와
시간을
알려 주었으며 현재의 종은 1726년 다시 만든
것으로
높이 3.1m, 직경 1.6m, 무게
13.5t이다.

(10)
북한국보 36호 동명왕릉 (東明王 陵)
제당(전실 높이 10m,제실높이 13m)
이 능은 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 무덤을 5세기에 재축조된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무덤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1993년에 대대적으로 개건되었다.
부여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 동명왕(고주몽, 혹은
추모)은
어린 시절부터 무술에 능하고 지략이
출중하였는데,
뜻을 같이 했던 오이, 마리, 협부 등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고구려를 세웠다고 한다.
동명왕은 주변의 소국들을 통합하고 외적들을
물리치면서
19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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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북한국보 179호
고려태조 왕건릉 (王建陵)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 역시 주변에 많은 왕릉들이
있다.
34명의 고려 왕 중 16명의 능(陵)이 개성에
있다.
이 중에서 왕건릉(현릉), 공민왕릉, 명릉군, 칠릉군
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나머지 왕릉들은 휴전선 근처 군사지역, 몽고의 침입을 피해
잠시
수도를 옮긴 강화도 등에 분포해 있다.
고려시대 왕릉은 고구려 능묘 전통을 이어받은 발해와 통일신라
능묘의
전통을 이어받아 계승 발전시켜, 조선시대 왕릉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고려 태조 왕건과 신혜왕후 류씨가 함께 묻혀
있으며,
현재 국보문화유물 제179호로 지정되어
있다.


(13)북한국보 18호 함흥
본궁 (咸興 本宮)
함흥본궁(咸興本宮)은 조선의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살던 집으로 뒤에 왕이 된 방과(정종)와
방원(芳遠:태종)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아들인 태조 방원이 보낸 사신들을
죽이거나
가두곤 했는데 '함흥차사'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한국전쟁때 일부 파괴되었으나 여러 차례 보수하여 대부분
복구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정전과 이성계 조상들의
위패를
모셨던 이안전, 누각인 풍패루 등이다.


풍패루
풍패루(豊沛樓)는 주위환경과 잘 조화된 2층
다락집이다.
풍패루 앞에는 넓은 연못이 있고 연못 속에는 작은 섬
하나를
만들어 놓았으며 주위에는 나무를 심어 그늘이 지게
하였다.
풍패루에서는 못 가운데 활짝 핀 연꽃을 보는 광경이 매우
훌륭하고,
잔잔한 연못 속에 풍패루의 2층 다락 그림자가 담긴 풍경이
아름답다.


(15) 북한국보 108호
함흥성 구천각 (咸興城九千閣)
구천각(九千閣)은 옛날 함흥읍성의 북장대(북쪽의
군사지휘소)로
고려시대인 1108뎐에 처음 세웠고 조선시대인 1713년에 고쳐
지었다.
함흥성은 고려 때 북관을 개척하고 설치한 9개의 성 중
하나이다.
구천각은 전시에는 전투지휘처로 평시에는
적을 감시하는 망루(초소)로 이용되었다


(16) 북한국보 124호 개성
남대문 (開城 南大門)
1391년에 착공하여
1394년(태조 3년)에 완공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보수를 했으며, 1900년(광무 4년)에 크게
개수했다.
1950년 한국전쟁때 파괴되어 1954년에 다시
복구하였다.
1393년(태조 2년)에 쌓은
석성(石城)의
정남문으로, 남대문이라고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