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세요 김현희!
김현희씨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참변중 하나가 1987년 11월에 미얀마의 근해 상공에서 115명의 고귀한 목숨을 싣고 서울로 날아오던 KAL 858편이 공중에서 폭파 되어 승객 전원이 몰사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우리는 그 참사가 아웅산 사건이나 다름없이 북한의 소행임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범인이 얼마 뒤에 해외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뉴스는 더욱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김현희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도 아직 기억 속에 새롭습니다.
그때 김현희가 자살에 성공했다면, 김일성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었겠지만 천인공노할 이 참사의 배후세력은 영원히 밝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김현희를 직접 만날 수 있었던 계기는 뒤에 청소년부 장관을 지낸 당시의 김영수 검사가 마련해주었습니다.
안기부의 보호로 연명하던 김현희에게 어느 기자가 근황을 물었을 때 “김동길 교수의 수필집을 읽고 있다”고 대답한 사실이 신문에 난 것을 보고 당국에 면담을 신청했지만 돌발적인 일정이 생겨 얼굴만 보고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 뒤엔 물론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조선일보에 실린 “최보식이 만난 사람” 이라는 인터뷰 기사를 읽고 이 붓을 들었습니다.
다 내가 알고 있고 짐작하고 있던 이야기들인지라 나에게는 새로운 것은 없었습니다.
김대중이 “반미. 친북”으로 그 터전을 마련하고, 노무현이 이를 “종북”으로 끌고 갔으니 당시의 국정원과 정의구현 사제단이 그 짓을 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리고 그 KAL기 폭파로 현대건설 소속 6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당시 현대건설의 회장이던 오늘의 대통령 이명박이 “사건의 진실을 뒤집으려는 죄에 대해 팔장끼고 보고만 있는 게” 나도 한심하기 짝이 없게 느껴집니다.
“생명 위협 느끼며...9년째 피신생활” 정말 눈물겹습니다. 우리 집에 와서 사세요,
남편과 아들. 딸 다 함께 김옥길 총장 세상 떠나고 그가 살던 2층의 방들이 다 비어있어요.
아래층에 사는 84세 노인 김동길이 살아있는 동안은 그대와 그대의 남편과 아들. 딸 절대 굶어 죽지 않아요.
이 고약한 놈들이 우리가 함께 모여 사는 우리 집을 폭파시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요.
조국의 역사를 이어나가야 할 그 아들과 딸을 무슨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살립시다.
그리고 우리 집이 폭파되면 다 함께 죽으면 되지 않아요. 당당하게 살다가 당당하게 죽읍시다. 대한민국의 빛나는 내일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