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承晩 대통령의 親아들 묘소!<부모를 그리워하며 고통스럽게 죽어간 鳳秀 이야기> 김필재(美國)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넘어온 18일(미국시간), 우리 일행은 이 지역에서 在美韓人들을 대상으로 李承晩 대통령 바로 알리기 운동을 펼쳐온 황준석 목사(필라델피아 ‘큰믿음제일교회’ 담임목사)의 안내로 1906년 미국에서 사망한 李承晩 대통령의 親아들 묘소를 찾았다.
李承晩은 생전에 親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전기에도 이 부분은 누락되어 있다. 親아들 鳳秀(아명: 泰山)의 묘지는 황 목사의 자택에서 자동차로 20여분 걸리는 거리로 ‘82에이커’에 달하는 거대한 공동묘지 (‘Lawnview’ 공동묘지)에 위치해 있었다.
양 옆에 생년인 1899와 사망년도(1906년)가 새겨져 있었다. 영문 ‘태사나’는 李承晩이 ‘태산아’라고 부르던 것을 들은 미국인이 발음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鳳秀가 죽기 1년 전 李承晩은 조지 워싱턴 대학에 편입해 학업과 강연을 병행했다. 朝鮮에 홀로 남아 있던 그의 첫 번째 부인 朴씨(본명: 朴承善)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7대 독자였던 鳳秀를 미국으로 보냈다. 이승만은 영어를 못하는 어린아들을 키울 수 없어 신문에 “이 아이를 맡아줄 기독교 가정을 찾는다" 며 "(WANTED A home in a Christian family for little Taisanah Rhee)” 광고(<워싱턴타임스>, 1905년 6월4일자)까지 냈다.
그녀는 다시 鳳秀를 보육원(Western Home for Children)에 맡겼다. 그리고 여덟 달 만에 디프테리아에 걸려 필라델피아 시립병원에서 사망했다. 李承晩은 아들이 죽는 그 시간에도 교회(Riverdale Presbyterian Church)강연을 했다. 이후 전보를 받고 달려갔으나 이미 사망한 뒤였다. 記者에게는 23개월 된 딸이 있는데 서로 멀리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여행은 즐겁지만 아기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말도 안통하고, 치료제도 없었던 디프테리아에 걸려 부모를 그리워하며 고통스럽게 죽어간 鳳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김필재(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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