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대한민국에도 自伐行爲가 자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自伐’이라는 말에서, 끊임없이 국가를 음해하고 利敵행위를 일삼는 ‘從北左派’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第1話]: “國必自伐而後人伐之”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뒤에 남이 치느니라)
고종 31년 갑오년(1894)에 전라도 고부에서 민란(동학란)이 일어났다. 동학교도들이 全州를 함락하자 기세에 눌린 조정은 <청>나라에 원병을 청했다.
1894년 5월 5일에 청군이 아산만으로 상륙했고, 청일 양국 간에 맺은 ‘천진조약’에 의거 일본군도 하루 뒤인 5월 6일에 인천항으로 출병했다.
이때, 왜국 함대를 이끈 왜국 공사는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였다. 그는 휴가 차 본국으로 갔다가 함대를 이끌고 돌아온 것이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우리 정부에 <5강16조>의 개혁안을 내밀며 개혁을 요구했다.
분명한 내정 간섭이었지만, 그 내용을 보면, 우리 정세에 따라 처방해준 약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었다. 모두 스스로 할 수 있는 쉬운 것들을 他에 의해서 하게 됨을 보고 <황현>이 탄식했다.
<우리가 힘써 행했다면 어찌 오늘과 같은 화가 있었겠는가? 옛말에도 이런 것이 있으니, 아 실졍.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뒤에 남이 치느니라(國必自伐而後人伐之).”>
※≪孟子: (離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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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話]: 청나라 공사가 임금의 매관매직을 비웃다.
고종 37년 경자년(1900) 12월에, 청나라 공사 <서수붕(徐壽朋)>이 본국으로 보고했다.
그가 처음 임금을 뵈었을 때, 조선의 기수(氣數=運數)가 왕성하고 풍속이 아름답다고 칭찬했다. 임금이 의아하게 여기고 그 연유를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저의 본국은 벼슬을 팔아 먹은 지가 십 년도 되지 않았는데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져 종묘사직이 거의 위태로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귀국은 벼슬을 팔아 먹은 지 삼십 년이나 되었는데도 제위(帝位)가 편안하니, 기수가 왕성하거나 풍속이 아름답지 않고서야 어찌 지금까지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임금이 크게 웃으며 부끄러운 줄 모르자 서수붕이 나가면서 말했다. “슬프구나, 대한의 백성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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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3話]: <이지용>과 그의 아내 <홍씨>의 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다.
고종 43년 병오년(1906), < 이지용>이 특파대사로 일본에 갔다. 이때 그의 아내 <홍씨>가 <이홍경>이라 이름을 짓고 함께 갔다.
이홍경은 처음에 왜국관리 <하기와라 슈이치(萩原守一)>와 정을 통했고, <쿠니와께 쇼타로(國分象太郞)>와도 통했으며, 나중엔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와도 통했다.
모두 조선(통감부)을 드나든 고위층 왜놈 관리였다. <萩原守一>이 귀국할 때, 이홍경이 배웅 나와 입을 맞추며 그의 입에 혀를 들이밀자 <추원수일>이 그 혀를 깨물었다.
이홍경이 아픔을 참고 돌아오자 장안 사람들이 ‘작설가(嚼舌歌 )’를 지어 비웃었다.
그녀는 양장차림으로 이지용의 손을 잡고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인력거를 타고 얼굴을 드러낸 채 권련을 물고 우쭐거리며 달렸는데, 행인들이 눈을 가렸다. 이지용이 이홍경과 찍은 사진을 사랑 대청에 걸어 놓았는데, 이따금 종놈이 막대를 들어 그 음부를 찌르며 “여기가 왜놈의 구멍이다” 하면서 낄낄댔다.
왜놈들도 질시하여 이홍경이 왜놈들과 끌어안은 모습을 찍어서 팔았는데, 열흘에서 한 달 사이에 장안에 나돌았고 개항장까지 퍼졌다고 한다.
이지용은 허랑방탕하여 임금에게 자주 꾸중을 들었는데, 이홍경이 <엄비>에게 드나들면서 임금의 뜻을 돌려 놓아 마침내 권세를 잡았다. 아내 덕을 입었으니 아내의 방자한 행동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내부대신이 된 이지용 또한 더욱 방자하여 乙巳五賊의 한 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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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4話]: <이완용>이 며느리와 간통하자 아들이 자살하다.
순종 1년 정미년(1907), 이완용의 아들 <李明九>의 아내인 <임씨>는 임대준의 딸이다.
이명구가 왜국에 들어가 몇 년 간 유학하는 사이에 이완용이 간통했다. 그가 돌아와 어느 날 안방에 들어갔는데 이완용이 임 씨를 끌어안고 누운 것을 보고 나와서 탄식했다.
“집과 나라가 모두 망했으니 죽지 않고 어찌하랴!” 그가 자살하자 이완용이 독차지하여 뻔뻔하게 첩처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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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5話]: 일본 박람회에서 한국인을 구경거리로 전시하다.
고종 44년 정미년(1907), 부산 백성 <정덕규>와 대구 여인 <박씨>가 왜놈에게 유인당해 동경으로 갔다. 두 사람은 서른도 되지 않았고 모두 어리석었다.
왜놈들이 이들을 한국 옷차림으로 꾸몄는데, 정덕규는 상투에 망건으로 묶고 큰 삿갓을 씌워 소매 넓은 도포를 입게 했고, 박 씨는 쪽을 지고 좁은 소매의 적삼과 긴 치마를 입혔다.
그리고 의자에 묵묵히 앉아 있게 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을 꿈틀거리는 동물 정도로 얕보고 박람회에 출품한 것이다.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두 사람은 시키는 대로 했다. 마침 그곳에 시찰 중이던 <민원식>이 그 광경을 보고 몸값을 내고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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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6話]: <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죽이자 우리 정부의 대응은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