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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지겹고 역겹다

정광국 2015. 12. 22. 16:11

국회, 지겹고 역겹다

 

⊙지겹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몹시 지루하고 싫다.

 

⊙역겹다.- 비위가 거슬려 토하고싶은

느낌을 주는 상태에 있다.

한국투명성기구는,

지난해 전국의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심층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치권인 국회와 정당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부패가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51%였다.

그만큼

정치권의 부패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당과 국회의 부패, 파행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근자

그 심각성은 도를 넘고 있으며

여,야의 첨예한 대치는

체제 안에서의 정책 대결이 아니라

이념전쟁’ 으로 가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할 정도다.

특히

집권여당의 무능과 매사를 아스팔트식

-운동권식으로 해결 하려는 야당의 무리수는

국회 무용론으로 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지금과 같은 국회라면 있는것 보다는

차라리

없는게 낫다는 생각도 할수있다.

정치권의 부패는

그것이 국정운영에 일차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민생과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건국한 민주공화국이다.

영어로는 Republic of Korea 이며

이때의 Republic은

공화국-共和國 이라는 뜻이다.

그 의미는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 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은,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때 사용되는 ‘의회민주주의’ 는

입법기관인 ‘국회’ 가 정치체제의

근간이라는 깊은 뜻을 가진다.

삼권분립이라 해도

입법부의 ‘법’ 을 집행하는 의미에서는

행정, 사법도 하위개념이 될수있다.

그만큼

입법부로서의

‘국회’ 의 위상과 기능은 막강하다.

의회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도 바로 그것이다.

전체주의 국가에는 ‘국회’ 가 없다.

따라서

국가운영은 국민의 뜻이 아니라

일인독재나 일당독재가 된다.

북한과 중국이 그런 사례들이다.

전세계의 모든 선진국들이

입법부-국회를 중심으로 하는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것은

공화제-共和制 가

가장

우수한 정치형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회-國會.

국회는 국민-유권자가 선출한 대의원-代議員

국회의원을 구성요소로 하는 합의체-合議體- 로서

입법, 재정, 기타 중요한 일반국정에

결정적으로

참여하는 기능과 권능이 부여된 기관이다.

헌법 제1조 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로 되어 있으며

오늘날의 국민주권주의 에서는

국민에 의해 선출, 구성되는 국회가

헌법에 의해 국민의 대표기간이 된다.

국회는

그 합리적 운영을 위해 국회의장, 부의장,

그리고

각종 위원회를 두고있다.

한편

각종 안건의 의사진행을 위해

20인 이상으로 구성되는

원내 교섭단체를 가질수 있으며

발언자 비율,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 구성도

교섭단체 비율에 의한다.

특히

국회를 구성하는 정당-교섭단체간의

원활한 소통과 의사진행을 위해

각 교섭단체는 원내대표를 두고있다.

의사당 에서의 의석배정,

각위원회 위원선임,

발언허가등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역할을 한다.

국회의원-國會議員.

국회의원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민-유권자의 대표자로서

회의체 국정심의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이 된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국회의원은 국회의 구성원 으로서

국회가 가지는 법률제정권, 예산심의권,

국정통제권의 정치적 행사에 참여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전체의

대표자 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강제위임이 금지된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 에서는

자기를 뽑아준 선거구민의 의사에

기속(羈束-얽어매어 묶는것) 되지 않으며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정당민주주의 아래에서

국회의원 대부분은

특정정당에 소속되어

정당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정당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구실도하게된다.

결국

국회의원들 대부분은

전체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지위와 정당구성원 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

이때

두 개의 지위가 상충되는 경우

국회의원들은 국민전체의 이익을 우선하며

행동 해야된다.

이상의

국회의원 지위와 그 활동에 대한 지침은

헌법 제7조 1항, 제 44, 45조, 46조2항에

규정되어 있는것들이다.

이미

서두에서 언급된 내용 그대로,

지금의 대한민국 국회는

가장 부패한 기관으로 판단되고 있으며

그 기능역시 수준이하의 운영으로

국민-유권자들의

지탄을 받고있는게 사실이다.

건국이래 65년여동안

국회가 국민들에게 커다란 희망으로

앞장섰던때는 한번도 없었다.

국회, 하면

언제나 가장먼저 떠 오르는 이미지는

난장판’ 이었다.

이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우리국회의 고질병과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의 개선을 위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

국회는

국가기관에서 핵심중 핵심이며

우리정치의 뿌리이기도 하다.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있는 공화제에서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민으로부터

합법적으로

그 주권을 위임받은 막강한 기구이기도 하다.

이러한

국가 중추기관이

지금처럼 파행을 거듭한다면

우리의 앞날이 어두워진다.

정치의 발전과 진화없이

경제발전은 없다는게

지금까지 세계가 경험한 결론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풍요롭게,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국회가 달라져야 한다.

이건 절대적인 명제이기도 하다.

지금의

파행국회를 진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수 있지만

가장 핵심은 결국 사람의 문제다.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국회의원 한사람 한사람의 자질과 수준,

사명감과 전문성,

그리고

애국심이 문제가 되는것이다.

가장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큰 문제는

국민-유권자에 의해

선출된 대의원인 국회의원이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고 있는점’ 이다.

실로

모든문제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당선만 되면,

유세기간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유권자들의 눈빛도,

자기가 했던 공약도 깨끗하게 사라지고

개인의 입신양명과 영달,

그리고

권력과 돈에 매이기 시작한다.

실로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더 나아가서는 타락하고 부패한

정당의 하수인이 되는것은 물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지역구와 국가에 대한 책임은 사라지고

패거리를 따라다니는

똘만이’ 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품위는 쓰레기만도 못한것이다.

그들이 막말을

거침없이 내뱉는게 그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자기가 누군지를 모른다는것,

이게 비극의 시작이다.

의회민주주의의 운영핵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토론’ 이다.

토론이 곧 의회민주주의인 것이다.

토론-討論 은,

어떤 의견이나 제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논리적인근거를 제시하면서

상대를 설득하거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모두가 아는대로

우리에겐 ‘토론문화’ 가 없다.

그래서

주먹이 먼저 나간다.

실로

국회의 모든 난장판은

토론할줄 모르는 사람들이

몸으로 싸운 현장들이다.

그들은

주먹도 모자라 망치, 전기톱, 빠루

심지어는 최루탄까지 터뜨린다.

단상을 점거하기 위한 몸싸움은

글자그대로 ‘개판’ 이다.

토론하기 위해서는

사안에 대한 공부-연구가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합리적인 근거도 마련해야 옳다.

모두가

‘학문적인 자세’ 가 요구되는 일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도서관’ 에는

공부하는 의원이 보이지 않는다.

정책은

연구와 공부에서 나오는 것이지

주먹에서 비롯되는것은 아니다.

토론이 없는국회,

토론할줄 모르는 국회,

이게 우리국회의 자화상이다.

툭하면 의사당은 떠나

거리로 나가는 악습도

토론을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당이 의사당을 떠나

거리로 나가는것은 정책에서 졌다는 뜻이다.

국회는 그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상임위원회’ 를 두고 있다.

현대국가는

국가기능이 확대됨에 따라

국회 본회의가 광범위한 영역 전반에 대해

심의하는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본회의 통과를 위한

예비적 실무의 필요에 의해

소수의 의원들로 구성되는 상임위를 두고있다.

지금 우리국회에는

국회운영위원회로부터

여성위원회까지 16개의 상임위가 있다.

각 상임위는

해당분야의 전문안건을 심의하는만큼

거기에 걸맞는 ‘전문성’ 을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아는대로,

그 어떤 상임위도 해당안건을

심도있게 심의할수있는 전문성이 없다.

이는

각 교섭단체가 전문성 보다는

정치적안배를 하는것이 큰 원인이고

위원회에 배정된 의원도

전문지식을 위한

공부-연구를 하지않기 때문이다.

한번

본회의를 통과한 법이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파급효과를 생각할 때

깊은우려를 금할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각종청문회에서 의원들이 뱉어내는

수준미달의 질문을 생각하면

그 무지의 수위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할수 있을 정도다.

전문성이 부족한 국회,

공부-연구 안하는 국회는

그래서 우리에게 큰 짐이 될수밖에 없다.

의회민주주의의 요체는,

토론-투표-결과에 대한 완전한 승복이다.

49대 51 이라도 다수는 다수인 것이다.

우리 정치권이

시끄럽고 난장판이 되는것은

다수결에

승복’ 할줄모르기 때문이다.

그 투표가 합법적이고 하자가 없다면

자기가 졌어도 결과에는 승복해야 된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다.

정당정치에서 ‘국민의 선택’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것이다.

여기에 승복할수 없다면

그건 대한민국 정당도,

국회의원도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민주당의 前원내 대변인인 홍익표의원은

당 정책회의가 끝난후 가진 브리핑에서

‘기스노브케와 박정희’ 라는 책을 인용,

귀태(鬼胎)라는 말을 사용,

박정희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으로,

박근혜를

그 귀태의 후손이

정상에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는 지난 4월에도 자신의 트위터에

‘대선무효’ 를 주장하는 글을 올렸으며

‘18대 대선은 무효다.

부전여전, 아버지 박정희는

군대를 이용해서 대통령직을 찬탈했고,

그 딸인 박근혜는

국정원과 경찰조직을 이용해서 사실상

대통령직을 도둑질한것‘ 이라고 했다.

그는 ‘기독교사회주의자’ 임을 자인하는

성공회신부-통일부장관

이재정의 정책보좌관을 지냈으며

지난 대선에선

문재인 후보의 통일, 외교, 안보정책

분야를 담당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모두가 두 눈으로 본 그대로

합법적인 투표절차와

그 결과에 의해 대통령이 됐다.

박근혜 개인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는것과

전체 유권자의 ‘선택’ 을 모욕하는것은

다른문제다.

국회의원 300명중 42%인 127명의 의석을 가진

새민련의 지지율은 최근의것이 19%다.

새민련이 할 일을 잘 하고 있다’ 는

평가는 13% 수준이다.

최근의 갤럽조사 결과다.

지난 대선에서

새민련을 지지했던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새민련을 떠난것이다.

원내대변인

홍익표의 ‘승복하지 못하는 자세’ 는

새민련이 극복해야할 정치적인 숙제다.

합법적인 결과에 승복하지 못 한다면

정치적 발전은 기대할수 없다.

김대중이든, 노무현이든, 박근혜든,

그들이 합법적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면

‘대통령직(職)’ 에 합당한

예우와 대우를받아야 옳다.

막말로

욕할수 있는 대상이 아닌것이다.

대한민국 이라는 국가를

대표하는 통치권자 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이 끝난후

민주당은 ‘질수없는 선거에 졌다’ 고 했다.

표차가 수만표 정도라면 할수도 있는 소리다.

그러나

표차가 100만단위라면

그게 어떻게 이길수 있었던 선거란 말인가.

여의도는,

그래서 먼저 결과에 승복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모두는

마지막 질문과 답변앞에서

정직하고 겸허해야 한다.

지금의 정치권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이 된것은

결국

우리들 유권자의 책임이다.

우리가 제 손으로 그들을 뽑아

국회로 보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한 나라의 정치수준은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이 사실이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점은,

여기까지가 우리의

한계’ 일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의

모든 분야가

비슷하게 부패하고 타락했다.

사실을 말 하자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중이다.

‘원전마피아들’ 의 천인공노할 범죄를 보면

그게 꼭 우리사회의 축소판같다.

세계가 놀래는 압축성장을 통해

2만불에 다가선 이후

15년이 지나도록 3만불 근처에도 못가고 있다.

겉모습은 이미 선진국인데

속은 안썩은데가 없는 완전한 후진국이다.

정말

여기까지가 우리의 ‘한계’ 가 아닐까.

생각해 보면

가슴아픈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결연히 ‘자기성찰’ 을 해야하며

나 자신부터 ‘다그쳐야’ 한다.

모든 문제의 뿌리는

실로

우리들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초조해지면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게된다.- 시오노 나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