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는본문의 설명과 직접 관계가 없는 역사 참고 자료입니다.
건강을 위하여 5분 안에 사진만 보시기를 권합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고고학 박물관 유물은 눈여겨 보셔도 좋습니다.
명품 몇 점만 골라 올린 것입니다.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Nationl Archaeological Museum)
문명의 발달 과정을 돌아보는데는 유적도 중요하지마는 그 내면을 보기 위해서는 박물관의 유물을
지나칠 수는 없다.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은 이오니아식의 기둥 8개로 현관(포치)을 만들고
그 양 옆으로는 열주 회랑을 만든 고전 양식의 건물이다. 기본적인 레이아웃은 가로 놓인 날일(日)자
형태의 정4각형에 가까운 건물이었으나 후에 뒷편에 이어서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선사시대로 부터 근대에 이르기 까지의 유물을 56개의 전시실에 전시하고 있다.
-국립 고고학 박물관-

그리스 역사 개관(선사시대부터 2015년 국가부도 위기 직전까지) : 참고 자료.
◆ 선사 시대( BC 10,000년 ~ BC16 C) : 그리스 본토의 신석기 문화가 존재했던 증거는 마케도니아 테살리아에
유적으로 남아있다. 키클라스 제도[아테네 남쪽에 원형(써클 = 그리스어 키클)으로 흩어져 있는 섬들]에서는
살리앙고스에서 신석기 유적(BC 4000)이 발견되었다.
◆ 미케네 시대(BC 16 C ~ BC 12 C) : 미케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군대가 10년간 소아시아의 트로이를
공격한 트로이 전쟁은 BC 1250년 경 그리스의 승리로 끝나지만 이민족의 침입으로 미케네는 사라진다.
◆ 그리스 문화의 암흑시대(BC 12 C ~ BC 800년) : 미케네 문명이 붕괴되자 그리스의 각 왕국들도
같은 운명을 맞는다. 고대 그리스의 암흑시대가 얼마간 계속된다.
◆ 도시국가 폴리스 탄생의 아르카이크 期(고전 전기 ; BC 800년 ~ BC 500년) : 기원 전 8세기가 되면서
여러 지역에서 도시국가(폴리스)들이 형성된다(코린토스, 아테네, 테베, 아르고스, 스파르타 등).
이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이 올림피아의 헤라신전, 코린토스의 아폴론신전, 아테네의 제우스신전,
디오니소스 극장등이 있다. (아르카이크 ; 그리스 어로 古風이라는 의미)
◆ 페르시아 전쟁 전승 후 고전기(BC 500년 ~ BC 338년) : 페르시아 전쟁(BC 492 ~ BC 479년)은
조그만 도시국가 그리스와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이었으나 그리스가 승리한 결정적인 두 전투,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이 페르시아 전쟁의 종식을 가져온다. 이 후 아테네는
고전 문화의 황금기를 맞는다. 그러나 아테네 지배력의 확대가 도시국가들 간에
30년 간의 지루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져 결국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난다.
-고고학 박물관의 전시실-

** 박물관은 56개의 크고 작은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제7전시실(아르카이크 期 조각 제1실) 모습.
◆ 헬레니즘 시대(BC 333년 ~ BC 31년) :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그리스 전역이 혼전 상황일 때
일개 부족 국가였던 마케도니아가 홀연히 나타났다. 스파르타를 제외한 그리스를 통일한 필립포스 2세가
암살되자 왕위를 계승한 알렉산더 3세는 부왕의 유지대로 동방 정벌에 나서 불과 10년만에 인도 북서부까지
전체 오리엔트를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BC 322년, 젊은 나이로 병사하자
그리스는 분열되어 로마군을 막지 못하고 BC 27년에는 로마의 속주로 전락, 헬레니즘 시대는 막을 내린다.
◆터키의 지배에 이르기까지의 로마, 비잔틴 시대(BC 31년 ~ 1453년) : 비잔틴 제국이 나타날 때까지 그리스는
로마 아래서 평화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제국의 절정기였던 마케토니아 왕조시대가 쇠퇴해 가고
11세기로 접어들면서 비잔틴 제국도 붕괴의 조짐을 보인다. 이 때에 아나톨리아 북서부에
나타난 술탄 메흐메트 2세가 이끄는 오토만 투르크에 의해 1503년 콘스탄티노풀이 함락된다.
1577년에는 그리스 전역이 오토만 제국의 속주가 되고 1100년간 지속되었던 비잔틴 제국은
역사의 장에서 사라진다.
◆ 오토만 제국 지배하의 암흑기(1458년 ~ 1821년) : 터키인의 그리스 민족 지배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에서부터
1821년의 반란이 있기까지 약 400년간 지속되었다. 오늘날까지도 "터키의 멍애"라고 말해지고 있는
오토만 제국이 지배하던 중세의 암흑기는 너무도 길었다.
-테미스(Themis) 여신 상(BC 300년 경)-

**테미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Ouranos)와 땅의 신 가이아(Gaia)의 딸로서 정의나 질서의 신이다.
- 제우스 혹은 포세이돈의 청동상( BC 460년 경)-

** 제 15실의 이 청동상은 "제우스 혹은 포세이돈"이란 이름표가 붙어있다. 높이 2,09 m 인 이 유뮬은
1928년 에비아섬의 아르테미시온 해저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3지창을 던지려는 포세이돈이다 혹은
번개를 던지려는 제우스다 라는 두 설이 있으나 설명문에는 전자일 확률이 높고
초기 고전기의 걸작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 말과 어린 기수(BC 140 년 경)--

** 제21실, 에비아섬의 아르테미시온 해저의 난파선에서 조각들로 수습한 청동상이다.
이러한 작품이 바다에서 발견되는 것은 국외로 유출 시키려 했던 배가 난파된 때문이라고 한다.
"아르테미시온의 기수"라고 알려진 이 유물의 기수는 왼손에 고삐를 잡고 있고 오른 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다.
1971년 미국 재단(American Lady & the Psichas Foundation)의 재정지원으로 재조립 되었다.
-아틱(Attic)의 붉은 색 그림의 도기-

** 왼편 : 키리아지스(Kyriazis) 家에서 기증한 이 항아리는 마라톤의 묘지에서 발견되었으며
장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BC 430 ~ 420년 경)
테세우스(Theseus)가 첫번째로 헬렌(Helen)을 유괴하는 장면 : 테세우스는 페리투스(Peirithoos)가
미리 준비한 전차로 헬렌을 인도하고 있다. 오른편에서 헬렌의 자매인 풰베(Phoibe)가 배웅하고 있다.
** 오른편 : 아크로 폴리스에서 발굴한 붉은색 그림의 굽 받침 도기 - 미궁에서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르(Minotaur)와 싸우고 있다. 미노스의 왕이 바라보고 있는동안 아리아드네(Ariadne)는
영웅에게 왕관을 씌워주려 하고 있다.(BC 480년 경)
- 아티카(Attica) 페라티(Perati)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유물들(BC 13 ~ 12 C)-

◆ 그리스 상인들의 활약과 항쟁이 이어지는 18세기의 그리스 : 유럽 제국이 공업제품의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그리스에 손을 뻗치자 그리스 상인들의 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19세기에 이르면 프랑스 혁명의
자유주의 사상이 파급되어 해방으로의 기운이 점차 고조되어 간다.
◆ 그리스 독립전쟁(1821년) : 1821년 해방조직의 반란으로 시작된 독립전쟁은 그리스 각지에서 터키의 진압과
보복으로 수 만 명이 살육되자 열강의 관심과 개입으로 그리스의 자치를 확보한다.
◆ 열강의 세력 싸움과 그리스 독립 : 1830년 영국과 프랑스가 그리스를 독립국가로 승인하는 '런던의정서'가
작성된다. 1828년 혁명 당초에 러시아가 내세운 러시아 외무 대신이었던 터키 출신의 그리스 수상이
반정부 단체에 의해 암살 당하자 열강들은 그리스를 군주국으로 하기로 하여
1833년 바바리아 왕(바이에른)의 둘째 아들 오토 4세를 내세웠다.
외국인의 지배 체제인 오토 왕국을 반대하여 일어난 것이 1843년 9월 혁명이다.
1862년 오토국왕이 퇴위되고 국외 추방되면서 1864년에 입헌군주제로 바뀐다.
그러나 이 때도 열강은 덴마크의 왕자 게오르기오스 1세를 그리스 국왕으로 파견하여
50년간 재위한다.
-포세이돈(Poseidon : BC 125 ~ BC 100)-

**제 30실, 밀로스(Milos)에서 발견된 하반신만 가린, 실물 대 보다 큰 이 신상의 오른 손에는 3지창이
쥐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의 오른쪽 다리 옆에는 돌고래 모양의 지지대가 있다.(파로스 섬의 대리석 석재).
◆ 영토 회복을 가져다 준 발칸전쟁 : 1912~1913년의 발칸 민족국들과 터키와의 발칸 전쟁은
발칸 민족 동맹국의 승리로 끝나고 전쟁 후반에 불가리아와의 전쟁도 승리함으로서
그리스는 대부분의 영토를 회복한다.
◆ 20세기 초 터키와의 충돌의 결과 : 1922년 그리스가 지배하고 있던 스미르나(이즈미르) 지구가
터키군의 침공으로 터키의 지배하에 들어가자 고대로 부터 소아시아에 정주해 있던
그리스인 150만명이 난민이 되었다. 이 싸움의 결과로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맺어진
"로잔조약1923)"에 따라 동트라키 와 스미르나 지구는 터키의 영토로 되고
터키 영토에 살고 있던 그리스 인과 그리스 국내에 살고 있던 터키 인과의
강제 교환이 실시된다. 터키와의 전쟁에서 패한 콘스탄틴 국왕이 퇴위하고
콘스탄틴 국왕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군사정권을 세운다.
-死者의 황금 가면(Gold death-mask made of sheet metal)-

** 제4실, 미케네 방의 유리관에 들어있는 이 황금 마스크는 미케네를 발굴한 독일인 고고학자 슐레이만이
아가멤논 왕의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아가멤논이 신화가 아닌 트로이를 멸망시킨 실존 인물임을 증명하였다.
BC 16세기 미케네(Mycenae) 묘지에서 출토.
- 기타 황금 마스크와 가슴 덮개(breastplate)-

** BC 16세기 미케네(Mycenae) 묘지에서 출토.
-기타 장식용 금붙이(Gold staff or sceptre)-

- 황금 잔-

**BC 16세기, 미케네(Mycenae) 출토
◆ 제2차 세계대전과 점령시대 : 1941년 독일군의 침공으로 독일 이탈리아군에 의한 4년간의
혹독한 점령 기간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 인들의 저항 의식과 게릴라전은
독일 패전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 미국의 개입으로 종결된 그리스 내전 : 2차 대전 후 그리스 국내에는 우익과 좌익으로 나뉜
내전이 시작되었다(1946~1949년). 이에 미국은 영국의 요청으로 트루만 독트린으로
그리스 보호에 나선다. 1963년 왕정이 폐지되고 그리스 공화국이 탄생한다.
1981.1.1일 10번째 유럽연합에 가입하여 유럽연합의 기금과 늘어나는 관광수입, 해운업과
서비스 부분의 성장으로 그리스의 생활 수준은 전례없이 높아졌다. 2001년 유로화의 도입,
2004년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 그러나 공공 복지의 과다한 지출과 경제침체로
최근에는 국가 디폴트 위기에 몰리고 있다.
-아프로디테, 판, 그리고 에로스(Aphrodite, Pan and Eros)-

**전라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양(羊)의 다리를 가진 목신(牧神) 팬(Pan)이 치근덕거리며
접근하는 것을 그녀는 샌들을 벗어 후려치려 하고 있다. 에로스가 달려와 말리고 있다.
기단의 명문에 의하면 베리토스(Beryttos=Beirut)의 디오니시오스(Dionysios)가
그의 조상 신들에게 바친것이다. 델로스(Delos)에서 발견( BC 100년 경).
각종 화보니 엽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명한 작품이다.
-아프로디테(Aphrodite) 와 헤르메스(Hermes)-

** 왼편 : 이태리 남부 바이아이(Baiai)에서 발견되었다. 원래 호프 경(Lord Hope)의 컬렉션에 속한 것을
1924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목, 머리 그리고 오른 팔은 이태리의 유명 조각가 카노바(A. Canova)가
복원한 것이다. BC 4세기의 시라큐스 아프로디테(Syracuse Aphrodite)원형 타입의 AD 2 세기 버젼이다.
** 오른편 : 펠로폰네소스 아이기온(Aigion)에서 발견되었다. 헤르메스의 오른 손에는 지갑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헤르메스의 지팡이 카두시우스(caduceus: 의술의 상징인 두마리의 뱀이 감겨있는)를 들고 있다.
BC 4세기 리시피아(Lysippean)의 원형에 영향을 받은 아우구스트 시기(BC 27 ~ AD 14)의 장례용 작품으로 추정.
Joke : 위의 사진에서 아프로 디테의 시선과 고개숙인 남자 헤르메스를 신화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니케(Nike)의 석상(2점)-

** 에피다우로스(Epidauros)에서 발견되었다.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서쪽 박공에 있던 것이다.
니케는 날아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며 날개는 별도의 대리석으로 만들어 붙였던 것이다.
그리스의 니케상에는 날개가 없는것이 특징이다. 니케가 그리스 이외에 다른 나라에가서
승리를 선물할 수 없도록 날개를 달아주지 않은것이다.
-시렌(Siren=사이렌)-

**아테네의 고대 공동묘지에서 발견되었다. 시렌은 아름다운 인간 여성의 얼굴에 독수리 몸을가진 동물이다.
거북이 등딱지로 만든 현악기를 가지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바다에 빠지게 하는것으로 알려져있다.
경보를 울리는 싸이렌의 어원이다.
- 젊은 남자의 청동상(Bronze Statue of a Youth)-

**안티키테라(Antikythera) 난파선에서 발견되었다. 이 청동상은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Perseus)로 알려져 있으나 더 가능성이 높은것은 가장 아름다운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상으로 줄 "경쟁의 사과(Apple of Strife)"를 들고 있는 파리스(Paris)라는 것이다.(파리스의 심판에서).BC 340 ~ 330 년경.
-디오니소스 탁상 지지대(Table support With Dionysiac group)-

**AD 170~180년. 출처 불명의 소아시아 지방 공방 작품이다. 작품에는 목신 판(Pan), 술의신 사티로스(Satyr)
그리고 디오니소스가 조각되어 있다.
-제우스(Zeus)의 두상 과 아우구스투스(Augustus) 청동상-

** 왼편 : BC 2세기 후반, 아카이아(Achaia), 아이게이라(Aigeira)에서 출토.
실물대 보다 큰 제사용 석상의 두상으로 눈은 다른 종류의 재료로 만들어 넣었던 것이다.
** 오른편 :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29 ~ AD 14)황제의 청동상이다.
에게해 유보에아(Euboea)섬 근해에서 발견되었다. 마상에서 오른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이고
왼손은 말 고삐를 잡고있다. BC 12 ~ 10 C 작품.
-권투하는 아이들의 프레스코 화(The Boxing children fresco)-

** 검은 피부색은 남성 흰색은 여성을 나타낸다. 산토리니섬의 고대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 '봄날' 프레스코 화(The Spring fresco)-

** 동일한 방의 3면을 같은 벽화로 장식한 유일한 예이다. 붉은 백합꽃이 만발하고 화산 폭발 이전의
풍경을 그린 벽화이다.
다프니 수도원(Daphni Monastery)
다프니(Dafni)는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약 40분 거리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도시 외곽을 지나는
고속도로 변 숲속에 단아한 수도원이 보인다. 1990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다프니 수도원은
비잔틴 시대의 건축 양식에 당시의 모자이크와 벽화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아폴론의 구애를 뿌리치던 다프네(Daphne)가 그녀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월계수가 되어
정절을 지켰던 신화에서 이곳의 명칭 다프니가 유래되었다고 한다.예전에는 이 지역에
월계수가 아주 많았다고 한다.
-다프니 수도원(자료실 사진 촬영)-

-수도원 정문-

-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수도원 교회-

-교회 정원에 방치된 석관들-

-수도원 부속건물-

** 복원 작업 중이라 교회 내부를 둘러 볼 수는 없다.
-복원작업이 진행 중인 현장에 핀 양귀비-

** 사진 오른 편에 보이는 교회에 붙어있는 부속 건물 2층은 자료실이다.
거푸집은 설치되어 있으나 작업하는 인부는 보이지 않는다. 세계문화유산 정원에 풀이 우거지고
야생화가 무성하게 자라는 풍경은 그리스 유적지 어디나 동일한 모양새이다. 가꾸고 부르지 않아도
관광객은 찾아오고 찾아온 관광객은 못보게 될까봐 안달을 한다.
-영상 자료실-

-영상을 통해 본 교회의 모자이크-

-피레우스(PIreas) 항구-

** 아테네에서 남서쪽으로 약 10 km 지점에 위치한 그리스의 해양관문이다. 기원전 490년 테미스토클레우스에 의해
아테네 외항으로 건설된 이래 아테네를 지키는 군항의 자리를 지켜왔다. 현재는 세계적인 상업항이 되었다.
-코린트 운하(Corinth Canal)-

**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사이에 동서로 길게 운하를 만들어 배가 지나도록 만들었다.
길이가 6.3 km 에 달하고 너비가 25 m , 수심은 7 m 에 이른다.
중앙의 메인 브릿지에서 서쪽으로 본 경관이다.
-코린트 다리(메인 부릿지)-

** 운하를 가로 질러 걸려있는 다리이다. 운하에는 세개의 다리가 놓여있다.
다리를 건너기 전 다리 오른편에 붉은 화강암으로 된 약 1 m 높이의 4각형 기념비가 서있다.
기념비의 내용은
"19세기 공법의 걸작인 코린트 운하를 설계하고 조직하며 건설을 지휘한
두 헝가리인 이스트반 튀르 와 벨라 게르스터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기념하며,
그리스와 헝가리간의 관계에 영구적인 기념물의 성공적인 인수는 미래 세대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1881년 부터 1893년 까지 건설공사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영광과 존경을 표한다." 이다.
-동쪽으로 본 코린트 운하-

**예로부터 이 운하를 만들 게획을 수차 시도했으며 로마 황제 네로도 6,000여명의 유대인을 동원하여
공사에 착수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프랑스 자본과 헝가리의 기술로 완성하였다.
-운하를 통행하는 광경(가판대의 엽서)-

** 이 운하가 완공됨으로써 아테네의 외항 피레에프스 와 이탈리아의 브린디시 사이의 항로를 320 km 단축하였다.
코린트(Korinthos) 고대도시
코린트는 고대의 그리스의 도시 국가이자 현대의 도시이다.
그리스 중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하며, 아테네로부터 78 km 남서쪽이고
사로니코스(Saronicos) 만과 코린토스(Korinthos) 만을 가르는 코린토스 지협에 있다.
코린트는 BC 6세기 중반까지 아테네 못지않게 상업과 무역도시로서 번성하였다.
BC146년 경 로마에 의해 코린트는 철저히 파괴된다.
다시 재건하지만 529년 과 1858년의 지진으로 파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폰론 신전-

** 고대도시 코린트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아폰론 신전은 그리스에 남아있는 신전 중
가장 오래 된것 중의 하나이다. 기원 전 6세기 경에 만들어 졌다가 기원전 46년 경 정복자이던
로마인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웅장한 도리아식 기둥 7개가 남아 있다.
-글라우케 샘 (spring)-

** 아폴론 신전과 박물관 사이, 낮은 곳에 있는 샘으로 커다란 자연 암반을 깍아내고 석재를 덧붙여
샘터를 만든것이다.
-카에사르(CAESAR = 시저) 와 안토닌(ANTONIN = 안토니오)라는 명문이 보이는 석재-

** 코린트를 정복했던 로마인들의 이름이 파괴된 유적 잔해에 보인다.
-섬세한 코린트 양식의 기둥머리-

-사도 바울의 4차에 걸친 전교 여행 행적-

**신약 성서에 나오는 고린도 전서가 코린트에서 있었던 일들을 일부 전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기독교를 전파한 주 무대가 이 도시였던 것이다. 4차여행은 로마에서 끝난다.
- 기독교 전파의 흔적-

-코린트의 중심가 레카이온 대로(Lechaion Road)-

** 레카이온 대로는 고대 코린트의 도시 한복판을 관통하는 대로다. 평평한 대리석 판석으로 포장된
넓은 이 길은 고대 코린트와 레카이온 항구를 이었다.
-레카이온 대로의 개념도-

-남쪽 주랑柱廊(The South Stoa)의 평면과 개념도-

**대로 남쪽에 있는 주랑은 고대 그리스에서 헬레니즘 양식의 가장 큰 주랑의 하나였으며
경주 트랙으로 BC4세기 말에.세워졌다. 발굴은 미국대학 고전학과에서 1933년~1948년에 실시하였다.
주랑의 면적은 0.4헥타 로서 규모는 164.38 m X 25.15 m 이다.
71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있었고, 내부회랑에는 34개의 이오니아식 기둥이 있었다.
주랑 뒷부분에는 2실의 아파트 33개가 있었다. 이 주랑은 AD 6 세기에 완전히 버려졌다.
- 피레네 분수(Peirene Fountain)-

-고대 피레네 분수의 재건 개념도-

-궁전 건물-

코린트 박물관 유물들
유적지 현장에 있는 박물관에는 유적지 출토 유물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그리스와 아마존의 전투(Battle of Greeks and Amazons)-

** 그리스 병사와 아마존 여전사의 전투장면을 표현한 부조이다.
-신들의 전쟁 : 아프로디테(Battle of the Gods : Aphrodite)-

- 모자익-

-프리기아 노예를 조각한 기둥(Phrygian captives)-
**2 세기 후반 ~ 3 세기 초 작품.
-가이우스 카에사르(Gaius Caesar) 와 아우구스투스 황제(Augustus)-
카에사르(시저)는아우구스투스의 손자이다. BC 20 ~ AD 4년 과 BC 27 ~ AD 14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