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리호 전사자 유족들, 감사 표해 류상우 기자 ![]() 조선닷컴 캡쳐 2002년 6월 29일 김대중 좌익정권 당시에 월드컵 축구 열기에 온 국민들이 빠져서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을 외칠 때에 북괴의 경비정이 연평도 근해 서해NLL을 침범하여 참수리 고속정 357호를 함포로 기습 공격하였다. 이 참수리호 기습공격으로 정장인 윤영하 대위를 비롯해 조천형 하사, 황도현 하사, 서후원 하사가 당일 전사했고 19명이 부상당했다. 우리 해군의 완승으로 끝난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과 달리, 아군의 희생이 컸던 제2연평해전은 대북굴종적 김대중정권이 만들어놓은 소극적 교전수칙 때문이었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룬다. “‘북괴의 공격에 당하고 방어하라’는 교전수칙을 김대중 대북굴종정권은 만들었다”는 비판은 아직도 여전이 회자된다. 이런 제2연평해전을 다룬 영화가 제작됐다고 한다. 조선닷컴은 2일 ‘연평해전’의 시사회를 보도했다. “13년이 흘렀지만 연평해전 여섯 용사의 유족들은 영화와 거리를 둘 수가 없었다. 자기 아들 또는 남편이 겪은 비극이었다. 그날의 상실감과 통증이 무조건 반사처럼 달려들어 유족들을 송두리째 흔들었다”며 조선닷컴은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이 1일 밤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유족들에게 처음 공개됐다”며 “대한민국이 월드컵으로 붉게 물들었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부터 참수리 고속정 357호 승조원들은 서해에서 느닷없이 고립돼 목숨 걸고 싸우는 장면에 접어들자 유족들은 감정적으로 힘겨워했다”고 보도했다. “영화 ‘연평해전’이 1일 밤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여섯 용사 유족들에게 처음 공개됐다. 13년이 흘렀지만 고통은 아물지 않았다. 2002년 6월 29일 참수리 고속정 357호 승조원들이 서해 바다에서 느닷없이 고립돼 목숨 걸고 싸우는 장면에 접어들자 유족들은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며 조선닷컴은 “한상국 하사 아내 김종선씨는 이날 유족들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예고편을 보다 밖으로 뛰쳐나가 길게 심호흡을 했다. 조천형 하사의 아내는 딸 시은이와 함께 극장에는 들어왔지만 영화 속에서 교전이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떴다. 화염 속에 스러지는 남편을 볼 마음의 준비가 안 됐던 모양이었다. 유족들은 우스꽝스러운 장면에서도 좀처럼 웃지 못했다”고 전했다. 박동혁 병장 부친 박남준씨는 “영화 속 장면이 99% 사실 같다”고 말했고, 한상국 하사의 모친 문화순씨는 “아들 시신 찾는 장면에서 엉엉 울었다. 고맙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다”며 눈물을 훔쳤고, 윤영하 정장의 부친 윤두호씨는 “‘짧은 인생, 영원한 조국애’라는 묘비명처럼 산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고, 조천형 하사의 모친 임헌순씨도 “아들 보내고 오늘도 힘들었지만 이렇게 잘 만들어주신 분들께 감사한다”는 말을 했다고 조선닷컴은 전했다. 참수리호에서 희생당한 순국장병들의 유족들은 국가를 원망하기 보다는 영화 제작자들에게 감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밤 시사회에는 이희완 소령(당시 부정장)을 비롯해 권기형·전창성·이철규 등 연평해전 생존장병들도 참석했다고 한다. 조선일보(박돈규, 김수경 기자)는 “이 영화는 축제 속의 전투이자 외롭고 비현실적인 싸움의 기록이다. 한국 전쟁영화로는 처음 3D로 개봉하는 ‘연평해전’은 포탄과 총탄이 달려들던 그날의 현장을 아프게 대리 체험케 한다. 스크린 속 전투 장면 30분은 실제 있었던 교전 시간과 같다. 피가 흥건한 갑판 바닥으로 탄피가 숨 가쁘게 쏟아진다”고 영화를 묘사하면서 “홍명보·안정환·황선홍 같은 2002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들은 기억하면서 그 축제를 지키다 숨진 연평해전 여섯 용사를 잊은 것이 부끄러워진다”는 소감을 밝혔다. 스포츠의 광기에 국민을 몰아가면서, 북괴의 침공에 대비한 국방을 약화시킨 김대중 정권의 적폐를 재삼 상기시키는 영화(연평해전) 같다. “이 영화는 2002년 4월 별명이 ‘약통(藥桶)’인 의무병 박동혁이 천안함에서 357호로 전입해 오며 시작된다”며 조선닷컴은 “연평해전 직후 논란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당시 TV 화면을 통해 전한다”고 정리했다. “영화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카드 섹션을 보여주고 경기장과 광장의 함성을 들려준다. 그날 참수리 357호 승조원들은 불길한 감청 내용도 모른 채 연평도 앞바다로 출항한다. 평화로웠다면 저녁 메뉴는 얼큰한 닭볶음탕이었고 여느 청년들처럼 한국과 터키의 월드컵 3~4위전을 시청하면서 ‘대~한민국’을 외쳤을 것”이라며, “영화 ‘명량’에 비하면 현실적 거리감도 훨씬 가깝다”고 평했다. ‘연평해전’은 ‘명량’보다 더 사실적이라는 것이다. “돈이 부족해 촬영이 여러 번 중단되며 표류했던 ‘연평해전’은 국민 성금으로 목적지에 닿았다. 순제작비 60억원 중 20억원이 크라우드 펀딩과 후원금 등으로 모였고 엔딩크레디트에 담긴 이름이 7000여명에 이른다. 영화 본편(120분)이 끝나고 11분 5초간 크레디트가 올라간다”며 조선닷컴은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후원한 마지막 이의 이름은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였다”고 전했다. 김대중 정권이 만든 ‘북괴에 두들겨 맞고 난 뒤에 방어하라’는 교전수칙이 ‘적극적 응전 개념’으로 수정되는 계기를 만든 제2연평해전의 6용사를 기리는 함정들과 더불어 영화(연평해전)도 만들어졌다. [류상우 기자: dasom-rsw@hanmail.net/]
![]() |
'소속 없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미국 그리고 한국 (0) | 2015.06.08 |
---|---|
백두산이 심상치 않습니다. (0) | 2015.06.08 |
*사전의료 의향서작성* (0) | 2015.06.04 |
[스크랩] 세계를 감동시킨 두팔 없는 10인 (0) | 2015.05.12 |
[스크랩] 황당한 사진들 (0) | 2015.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