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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봉(李玉峰)은 누구인가?

정광국 2013. 12. 4. 16:47

이옥봉(李玉峰)은 누구인가?


이옥봉은 전주이씨로 본명은 숙원이고 옥봉(玉峰)은 호이다. 조선중기 후반

선조대왕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충북 옥천군수를 지낸

이봉의 서녀이다. 

비록 첩의 딸이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고위관리였고 집안은

왕족이었습니다. 옥봉은 어려서 부터 아버지에게 글과 시를 배웠는데

너무도 글재주가 뛰어나 그녀가 지은 시는 주위를 놀라게 했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 신분때문에 첩살이밖에 할 수 없음을 알자, 옥봉은

결혼할 생각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가서 내노라하는 시인 묵객들과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옥봉의 시는 재기 발랄하고 참신하여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지내던 어느 날 조원이라는 젊은 선비를 만나고

부터 옥봉은 열렬한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옥봉의 사랑을 알게 된 아버지 이봉은 조원을 찾아가 딸을 첩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간청했지만, 이미 결혼한 몸이라 조원은 거절했습니다. 딸을 너무도

사랑했던 이봉은 체면을 따지지 않고 조원의 장인인 이준민에게 도움을 청했

습니다. 결국 이준민의 주선으로 옥봉은 소원을 이룹니다.

 

자기 딸을 첩으로 들여 달라고 사위 될 사람의 장인에게 청을 하고, 자기 딸의

시앗이 될지도 모르는 여인을 첩으로 추천하다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조선

사대부들의 행태이지만, 어쨌든 옥봉은 결혼 후 다른 사대부의 첩들과 시를

주고 받기도 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쓴 시 한편으로 불행한  ‘필화사건’ 얼어나게 됩니다.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집 아낙네가 옥봉을 찾아와 산지기인

남편이 소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잡혀갔느데, 조원이 편지 한 장 써

주면 풀려날 것 같으니 도와달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아낙을 불쌍히 여긴

옥봉은 남편을 대신하여 시를 한 수 지어 주었습니다.

 

洗面盆爲(세면분위경)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梳頭水作油(소두수작유)참빗에 바를 물로

                                    기름 삼아 쓰옵니다.

妾身非織女(첩신비직여)첩의 신세가 직녀가 아닐진대

郎豈是牽牛(낭기시견우)어찌 낭군께서 견우가 되리까.

‘’

‘’

 

너무도 가난하고 청렴하게 살지만 견우가 아닌 남편이 어찌 소를

훔쳤겠느냐고 멋지게 항변한 이 시를 본 관리들은 남편을 석방에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알게 된 조원은 뜻밖의 행동을 합니다.

 

옥봉을 내친 것입니다. 

 

조원하고 함께 산지 20년쯤 되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그토록 사랑하고

그토록 오랬동안 정을 나눈 여인을 조원은 어찌 그리 매정하게 단칼에

내첬을까요?

 

처음 첩으로 들어을 때 시를 짓지 말기로 한 언약을 깨뜨려서 내쳤다는

이야기도 전해 오지만 믿기 어렵습니다. 결혼을 하고서도 그녀가 간간이

 시를 지은 흔적이 있는데가가, 시와 철천지원한을 맺지도 얺은 선비가

부인이 시를 썼다고 이혼한다은 것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공적인 판결에 벼슬아치의 부인이 끼어들어 구설수에 오르내리게 된

것을 용납하기 어려워서일까요? 조원의 꽁한 선비 기질로 보건데 타당한

이유일 듯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판결을 크게 어지럽힌 것도 아니고

탄원서를 시(詩)로 써준 정도에 지나지 않은 데, 그걸 이유로 이혼을 하다니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동으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남편을 이옥봉은 밤마다 꿈속에서 그리워 합니다.

 

여기 이옥봉의 그 유명한 연시인 몽혼(夢魂 : 꿈속의 넋에게)을

올립니다.

 

近來安否 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 안부 묻습니다. 안녕하신지요

月到紗窓 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 달빛 창가에서 소첩 한이 많습니다

若使夢魂 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 꿈속에 오고간 길 흔적이 난다면

門前石路 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 그대 문 앞 돌길 반은 모래가 되겠네요

 

조원이란 남자의 졸렬한 행동은 이런 사랑을 받을 가치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데도 이옥봉은 우리가 모르는 조원의 또 다른 매력에 사로

잡혀 있었나 봅니다, 그에게 버림받은 뒤 한강변 뚝섬의 오두막집에서

미친 듯 울며 밤마다 시를 쓰는 여인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래서 그녀의

사랑시는 간절하고, 정열적이고, 슬픔이 가득 차 있습니다.

 

離別(이별) 

 

間此夜 離情多(인간차야이정다)이 밤, 우리 이별 너무 아쉬워

落月蒼茫 人遠波(낙월창망인원파)달은 멀리 저 물결 속으로 지고

借問今宵 何處宿(차문금소하처숙)묻고 싶어요, 이 밤 어디서 주무시는지?

旅窓空聽 雲鴻過(여창공청운홍과)구름 속 날아가는 기러기

]                                                 울음소리에 잠 못 이루 시리

 

냉정하기 짝이 없는 조원에게 바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저 시들은

이옥봉은 아낌없이 쏟아놓고 세상을 떴습니다. 임진왜란이 얼어났을 때

난리 통에 죽었으려니 짐작할 뿐, 정확한 생사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옥봉에 대한 기이한 후일담이 <지봉유설>에 전해 옵니다.

 

그녀가 죽은 진 40년쯤 뒤, 조원의 아들 조희일이 중국 명나리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의 원로대신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중국인 원로 "조원을 아느냐?"

조희일 "저의 아버지 입니다." 라고 대답하니, 이 중국인은 서가에서

책 한 권을 보여주엇는데 그 책 표지에 「이옥봉 시집」이라 씌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첩으로 생사를 모른 지 40여 년이 된 옥봉의 시집이 어찌하여

머나먼 명나라 땅에 있는지 조희일로선 너무도 기이하고 놀라웠습니다.



약 40년전, 중국 동해안에 괴이한 시체가 떠다닌 다는 소문이 돌았다.

 

너무도 흉측한 몰골이라 아무도 건지려 햐지 않아서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포구로 떠돌아다닌다고 했다. 그곳 향리의 원로가 사람을 시켜 건져보니 온몸을

종이로 수백 겹 감고 노끈으로 묶은 여자의 시체였다. 

 

노끈을 풀고 겹겹이 두른 종이를 한 겹 두 겹 벗겨내니, 바깥쪽 종이에는 

아무것도 씌어있지 않았으나 안쪽 종이에는 빽빽하게 뭔가가 적혀 있었다.

시()였다.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는 이름도 보였다.

시를 읽어본즉 하나같이 빼어난 작품이라, "내가 거두어 책을 만들었다."

라고 그 중국인이 말하였다. 

 



온몸을 자신의 시로 감고 죽다니....

그 시로 몸을 감고 바다에 뛰어 들다니....

 

왜 이런 후일담이 전해 올까요?

조원에 대한 미움과 분노에 시로 몸을 감고 바다에 뛰어든 걸까요?

여성을 천시하고 인간으로 대하지 않은 봉건적 여성관에 죽음으로

항의한 결과 일까요? 결국은 시로 남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침묵으로 웅변한 걸까요?

독자님께서 현명하게 판단해 보세요

 

인터넷에서 발췌 옮김 東巖 鄭哲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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