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있어요

개 코도 모르면 잠자코나 있지

정광국 2013. 10. 24. 17:17

개 코도 모르면 잠자코나 있지 

 

 

     숙종대왕이 어느 날

     미행 중 수원성 고개 아래 쪽 냇가를 지나는 데

     허름한 시골총각이 관을 옆에 놓고 슬피 울면서

     물이 나오는 냇가에다 묘 자리를 파고 있는

것을 보고

    ‘아무리 가난하고 몰라도 유분수지

     어찌 묘를 물이 나는 곳에 쓰려고 하는지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무슨 연고가 있지 싶어 그 더벅머리 총각에게로

다가가

    ‘여보게 총각 여기 관은 누구의 것이요’

     하고 물었다.

 

    ‘제 어머님의 시신입니다.’

    ‘그런데 개울은 왜 파는고?’ 하고

     짐짓 알면서도 딴청을 하고 물으니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합니다.’

 

     미루어 짐작은 했지만

     숙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보게 이렇게 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어찌 여기다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하는가?

     하고 재차 다그쳐 물으니

     그 총각은

    "저도 영문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갈 처사라는 노인이 찾아와 절더러 불쌍타

하면서 저를 이리로 데리고 와

     이 자리에 묘를 꼭 쓰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 분은 유명한 지관인데,

     저기 저 언덕 오막살이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라고 힘없이 대답을 하고는 옷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곤혹스런 처지를

     처음 보는 양반나리에게 하소연하듯 늘어놓았다.

 

     숙종이 가만히 듣자하니

     갈 처사라는 지관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궁리 끝에 지니고 다니던 지필묵을 꺼내어 몇 자

적었다.

    "여기 일은 내가 보고 있을 터이니 이 서찰을 수원

부로 가져가게.

     수문장들이 성문을 가로 막거든 이 서찰을 보여

주게."

 

     총각은 또 한 번 황당했다.

     아침에는 어머님이 돌아가셨지.

     유명한 지관이 냇가에 묘를 쓰라고 했지.

     이번에는 웬 선비가 갑자기 나타나

     수원부에 서찰을 전하라 하지.

     도무지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추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총각은 급한 발걸음으로 수원부로 갔다.

     서찰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명! 수원부사는 이 사람에게 당장 쌀 삼백

가마를 하사하고,

     좋은 터를 정해서 묘를 쓸 수 있도록 급히

조치하라.

 

     수원부가 갑자기 발칵 뒤집혔다.

 

     창고의 쌀이 쏟아져 바리바리 실리지를 않나.

    "아! 상감마마, 그 분이 상감마마였다니!"

     총각은 하늘이 노래졌다.

     다 허름한 시골 총각에게 유명한 지관이 동행하질 않나,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냇가에서 자기 어머니 시신을 지키고 서 있을 임금을

생각하니,

     황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한 편 숙종은

     총각이 수원부로 떠난 뒤

     괘씸한 갈 처사라는 자를 단단히 혼을 내 주려고

     총각이 가르쳐 준 대로 가파른 산마루를 향해

올라 갔다.

     단단히 벼르고 올라간 산마루에 있는

     찌그러져가는 갈 처사의 단칸 초막은

     그야말로 볼품이 없었다.

 

    "이리 오너라"

    "..............."

    "이리 오너라"

    ".............."

     한참 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게 뉘시오?"

     방문을 열며 시큰둥하게 손님을 맞는 주인은

     영락없는 꼬질꼬질한 촌 노인네 행색이다.

     콧구멍만한 초라한 방이라 들어갈 자리도 없다.

     숙종은 그대로 문밖에서 묻는다.

.

    "나는 한양 사는 선비인데 그대가 갈 처사 맞소?"

    "그렇소만 무슨 연유로 예까지 나를 찾소?"

    "오늘 아침 저 아래

     상을 당한 총각더러 냇가에 묘를 쓰라했소?"

    "그렇소"

    "듣자니 당신이 자리를 좀 본다는데

     물이 펑펑 솟아나는 냇가에 묘를 쓰라니

     당키나 한 일이요?

     골탕을 먹이는 것도 유분수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요? "

.

     숙종의 참았던 감정이 어느새 격해져 목소리가

커졌다. 갈씨 또한 촌 노인이지만

     낯선 손님이 찾아와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비란 양반이 개 코도 모르면서 참견이야.

     당신이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명당 터인 줄

알기나 해?"

.

    이 양반아 저기는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3백가마를 받고 명당으로 들어가는 땅이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통에 숙종은 기가 막혔다.

   속으로 이놈이 감히 어느 아전이라고 대왕 앞에서,

     어디 잠시 두고 보자 하고 감정을 억 누르며

    "저기가 어떻게 명당이란 말이요?"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발복을 받는 자리인데,

     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때?

     개 코도 모르면 잠자코 나 있으시오"

     숙종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갈 처사 말대로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총각은 쌀 3백가마를 받았으며

     명당으로 옮겨 장사를 지낼 상황이 아닌가!

     숙종은 갈 처사의 대갈일성에 얼마나 놀랬던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공손해 졌다.

    "영감님이 그렇게 잘 알면

     저 아래 고래등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살지 않고

     왜 이런 산마루 오두막에서 산단 말이오?"

   " 이 양반이 아무 것도 모르면 가만이나 있을 것이지

     귀찮게 떠들기만 하네"

    "아니, 무슨 말씀인지"

     숙종은 이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저 아래 것들은 남을 속이고 도둑질이나 해 가지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 가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도 여기는 바로 임금이 찾아올 자리여.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나랏님이 찾아올 명당이란 말일세"

     숙종은 그만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이런 신통한 사람을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었다.

     꿈속을 해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왕이 언제 찾아옵니까?"

    "거, 꽤나 귀찮게 물어 오시네.

     잠시 기다려 보오.

     내가 재작년에 이 집을 지을 때에 날 받아놓은

것이 있는데,

     가만.... 어디에 있더라"

     하고 방 귀퉁이에 있는 보자기를 풀어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먼지를 털면서 들여다보더니......

     그만 대경실색을 한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에 나가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종이에 적힌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시간이었다.

     임금을 알아 본 것이다.

    "여보게.... 갈 처사, 괜찮소이다.

     대신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 묻힐 자리 하나 잡아주지 않겠소?"

    "대왕님의 덕이 높으신데

     제가 신하로서 자리 잡아 드리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어느 분의 하명이신데 거역하겠사옵니까?"

     그리하여

     갈 처사가 잡아준 숙종의 왕릉이

     지금 서울의 서북쪽 서오능에 자리한 "명능"이다.

 

 

     그 후 숙종대왕은

     갈 처사에게 3천냥을 하사하였으나,

     노자로 30냥만 받아들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이야기가

     지금껏 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