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국
2014. 6. 1. 21:46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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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순련 /신현초등학교 교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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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의 학자이자 충신이었던 정몽주는 그릇된 기강을 정비하여 국체를 확립하고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여 제반 제도를 재정비하는 등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 세우고자 노력하였다. 이에 반해 이방원은 정도전 등과 함께 아버지인 이성계를 추대해 새로운 나라 조선왕조를 열고자 하였다. 그때 마침 사냥을 나갔다가 낙마하여 병석에 누운 이성계를 병문안 온 정몽주의 마음을 슬쩍 떠보기 위해서 이방원은 ‘하여가’를 읊었다.
此亦何如彼亦何如
(차역하여피역하여)
城隍堂後垣頹落亦何如
(성황당후원퇴락역하여)
我輩若此爲不死亦何如
(아배약차위불사역하여)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
우리도 이같이 하여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
이에 답하여 정몽주가 부른 시조가 ‘단심가’이다.
此身死了死了一百番更死了
(차신사료사료일백번갱사료)
白骨爲塵土魂魄有無也
(백골위진토혼백유무야)
鄕主一片丹心寧有改理歟
(향주일편단심영유개리여)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참 멋지고 근사한 한 판 승부다. 우리 조상들은 나라 하나를 죽이고 살리는 일에도 이처럼 한 편의 글로 멋진 대결을 하였던 것이다. 칼을 쓰는 이방원은 1367년생이고, 학자인 정몽주는 1337년생이니 정몽주보다 이방원이 30년이나 후배다. 뿐만 아니라, 칼을 사용했던 무인들은 글과는 무관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칼을 쓰는 이방원이 학자인 정몽주 못지않게 멋진 ‘하여가’란 시조를 지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을 한 편 탄생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더구나 설명문이나, 논설문이 아니라 함축된 글인 詩로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 상대가 대학자인 정몽주에게 대역죄를 꿈꾸는 회유의 글을 전하기 위한 한 편의 글을 탄생시키기 위하여 이방원은 밤마다 얼마나 고심했을까?
결국 이방원은 정몽주가 절대로 자기편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길인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인다. 어쩌면 정몽주는 이 한편의 단심가로 인하여 죽었다고 볼 수도 있다. 행여 그 일에 동참하겠다든지, 아니면 조금 두고 보자는 식의 말미를 주는 시를 지었다면 또 다른 역사가 일어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글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이틀간(7시간30)을 함께 하면서 정상간의 우의를 다졌다. 특히 시주석의 요청으로 마련된 특별오찬은 두 정상의 친밀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사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 행사에는 시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여사까지 함께 한 오찬이었고 화기애애하고 친밀한 분위기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 행사장에서 박대통령은 오찬 시작 무렵 비즈니스포름에서 연설을 한 ‘선주붕우 후주생의’(先做朋友 後做生意)라는 중국 고사성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먼저 친구를 만든 후에 비즈니스를 하라는 말을 중국어로 전하자 시주석은 이 말이 분명히 중국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을 것이라고 답하며 반겼다고 한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땐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예의를 표하고 있다. 박대통령과 시주석 역시 방문의 기념으로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는데 시?주석이 박대통령에게 전한 귀한 선물 이야기를 하고 싶다.
먼저 우리 박대통령은 시주석에게 춘천옥으로 만든 찻잔세트를 선물하며 우리나라 춘천에서 나오는 옥으로 만든 찻잔인데 옥은 예부터 여러 잡귀를 쫓아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 선물을 전했다. 이에 시주석이 박대통령에게 전한 선물은 한중관계의 발전을 의미하는 왕지환(王之換.688~742)의 한시시구(詩句)가 담긴 서예작품을 선물했다. 이 시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해는 뉘엿뉘엿 서녘하늘로 저물고/황하는 바다로 흘러가네/천리 너머까지 보기 위해/ 다시 한 층 누각을 오르네/ 라는 뜻이라고 한다. 박대통령께서 선물 받은 이 왕지환의 시는 중국인들 사이에는 초등학생들도 암송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시라고 한다.
시진핑 주석은 이 시를 선물하며 두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한중 양국 관계를 한층 더 발전시키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전했다. 이 시의 의미를 설명한 시진핑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박대통령께서도 이 시를 잘 알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시라 많은 분들이 암송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께서 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며 받아온 선물을 진열해 놓은 것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 선물의 대부분이 그 나라의 특산물이거나 그나라의 장인이 만든 귀한 특산품이나 공예품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대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할 때도 지금까지는 대부분 찻잔이나 우리나라 공예품을 전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시진핑이 선물한 것은 공예품이거나 그 나라의 특산품이 아니라 바로 왕지환의 한시 한 편이었다.
이 얼마나 멋지고 황홀한 선물인가? 이방원과 정몽주가 한 편의 글을 통하여 거사를 넌지시 타진했고, 이 시를 듣고 단호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힌 정몽주의 시조처럼 글은 이렇게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번 중국방문을 통하여 이 선물을 준 시진핑주석이나, 선물을 받은 박근혜대통령은 이글의 뜻을 항상 깊이 생각해 볼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글은 말보다 힘이 세다. 특히 詩는 많은 생각과 의미가 그 몇 문장 속에 함축되어 있다. 양국 우의의 뜻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를 모르지만 이 선물에 적혀진 왕지환의 시처럼 제발 아름답고, 바른 관계를 이루어나가는 양국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
등관작루(登鸛雀樓) - 왕지환(王之渙)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때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시이다.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등관작루(登鸛雀樓)를 잘못쓴게 너무 많아
바로 고치려고 한다.
관작루(鸛雀樓)는 중국 산시성(山西省) 윈청(運城)에 위치한 누각.
북주(北周)시기에 세워졌다. 원(元) 초기에 발생한 전쟁과 황허강(黄河) 범람으로 훼손되었으나,
당(唐)의 건축형식을 본떠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황새 서식지 위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현재의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신문기사를 검색해 보니 대부분 제대로 쓰지 않고 있었다.
登鸛雀樓 옳은 표기(황새관, 참새작)
登鸛鵲樓 틀린 표기(황새관, 까치작)
登觀雀樓 틀린 표기(볼관, 참새작)
登觀鵲樓 틀린 표기(볼관, 까치작)
미불의 행서체로 쓴 왕지환의 등관작루
등관작루(登鸛雀樓) - 왕지환(王之渙)
白日依山盡(백일의산진) / 밝은 해는 어느덧 서산에 걸려있고
黃河入海流(황하입해류) / 황하는 바다로 흘러가네
欲窮千里目(욕궁천리목) / 천리밖 먼곳까지 더 보려거든
更上一層樓(갱상일층루) / 다시 한 층을 더 올라서게나
왕지환(王之渙 , 688 ~ 742) , 당나라
전당시(全唐詩) 권253에 5편의 시가 실려있다.
(登鸛雀樓) (送別) (涼州詞二首) (宴詞) (九日送別)